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타구치 렌야 (문단 편집) === [[중일전쟁]] === 의외로 [[임팔 작전]]에 비해 유명하지 않은 부분이지만, '''단신으로''' [[중일전쟁]]을 일으켜서 결과적으로 [[백만대군]]이 넘는 인력을 전투불능으로 만든 인물이다. [[중일전쟁]]의 시작이었던 [[노구교 사건]] 당시 무타구치 렌야는 대좌로서 [[연대장]] 직책에 있었는데, 당시 의문의 총성 몇 발이 난 후 일본군 병사 하나가 갑자기 잠깐 동안 사라지자[* 이 병사는 얼마 후 복귀했다. 사라진 이유는 설사 때문에 화장실을 가느라였다.] 이를 [[국민혁명군]]의 소행이라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단정하고는 자신의 연대에 [[국민혁명군]]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. 당연하지만 이는 [[군형법#s-6.4|불법 전투 개시]]였다. 워낙 뜬금없는 공격 명령이라 휘하 대대장 [[이치키 기요나오]] 소좌가 "정말 공격해도 됩니까?"라고 되물었을 정도였다. 무타구치는 "정말 해버려도 좋단 말이야!"라면서 재차 공격을 명령했고, '''이것이 [[중일전쟁]]의 시작이었다.''' 다시 말하지만 그는 당시 [[장성급 장교|장성]]이 아니라 고작 [[연대장]] 직책의 [[대좌]]였으며[* 대한민국 육군으로 치면 [[영관급 장교]]인 [[대령]]에 해당한다.], 공격 명령에 대해 육군성이나 참모본부에서 '''어떠한 허가도 받지 않았음'''에도 그는 기어코 전쟁을 시작해버렸다. 그러다가 기자들이 벌어지고 있는 전투를 취재하러 오자, 무타구치는 전선에는 나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피 묻은 붕대를 팔에 감고는 "국민혁명군의 도발을 내가 격퇴하는 중이다."라고 [[언론플레이]]를 했다. 한편 당시 총리대신 [[코노에 후미마로]]는 이렇게 무타구치가 멋대로 행한 개전에 대해 처음에는 확전 반대를 주장하면서 사태를 외교적으로 수습하려는 듯 하였으나, 고작 며칠만에 입장을 바꿔 현지 일본군 증강을 허가하였고 '''결국 [[화북전역]]으로의 이행을 묵인해 버렸다.''' 이후 무타구치는 불법 전투 개시로 총살 당해도 모자랄 판국에 '''소장으로 진급'''했고, 제4군 참모장을 거쳐 1939년 육군유년학교 교장이 되었다. 이 불법 전투 개시는 당시 일본군에 만연하던 [[따갚되|결과만 좋으면 그만아니냐?]] 라는 생각과 총사퇴가 명절행사가 돼서 관동군을 통제불가능한 내각 등이 버무려진 결과이기도 하다. 정상적인 내각과 군부였다면 외교적으로 끝낼 일은 백만명이 넘는 일본군이 중국에 묶여 돈먹는 하마가 되는 치명타가 된다.[* [[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|체급이 더 큰]] 미국을 공격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중일전 승리가 목표임을 생각하면 어찌보면 [[모든 일의 원흉]]이라고도 할 수 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